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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화 흩날리는 환상향 1~2화

루뇨 리버 2023. 11. 17. 14:15

사신(死神)

 


인간이 모종의 사유로 죽음에 이르면 그 혼을 명계로 이끄는 자.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교향곡에 칠흑색 마침표를 찍는 검은 양복의 지휘자.

 


"자, 이젠 진짜 도망갈 곳도 없지? 장 받으시오~!"

 


죽음

 


인간이 현세에서 누렸던 모든 지위, 관계, 부, 지식, 아름다움을 일순간에 부정당하는 현상. 자신이 현재 소유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저승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는 첫 걸음.

 


"아이고... 한 수만 물러주면 안 되는가? 나이를 묵어서 그런가 머리가 팍팍 안 돌아가는구먼..."

 


인간이라면 무릇 본능 속에 내재된 죽음이라는 공포. 그 죽음을 안내하는 존재인 사신은 모든 이에게 두려움의 대상일 것이다.

 


"장 두는 사람 어디 갔나~ 흐아암~ 지루~하다~"

 


태양이 구름 한점 없는 하늘 위 꼭대기에서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는 무더운 여름의 평범한 일상. 장기 삼매경에 빠져있는 삼베옷을 입은 노인과 피안화처럼 붉은 머리를 한 처자.

 


오노즈카 코마치는 사신이다.

 


"아이고오... 포(包)만 그렇게 잃지 않았어도... 거의 다 이긴 판을... "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아서일까, 땀을 뻘뻘 흘리며 인상을 한껏 쓰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끝인가 영감?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다들 안 믿지만 난 이래봬도 바쁜 몸이라구~"

 


왜일까? '여기서 끝'이라는 단어가 귀에 박히기가 무섭게 노인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아차차... 내가 말 실수를 한건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닌데..."

 


한창 장기로 열기를 불태우던 둘 사이의 고조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묘한 정적만이 흐르기 시작했다.

 


연신 식은땀을 흘리는 노인의 귓가에는 그저 처량하게 매미 우는 소리만이 맴돌고 있었다.

 


찌르르 찌르르...

 


얼마간의 정적이 지났을까, 무언가 큰 결심을 한 듯 노인은 두 눈을 질끈 감고는 마른침을 '꼴깍'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미안허이... 내가 너무 억지를 부렸구먼..."

 


노인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

 


"아무리 마지막 가는 길 부탁이라지만 이 것부터 순 억지였는데 말일세. 이것도 저것도 순 억지 투성이로구만. 어쩌면 내 인생과 다르지 않아. 비루한 인생 어거지로 여기까지 살아왔으니... "

 


그러고는 노인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코마치는 주름진 얼굴이 패일 정도로 깊은 웃음에서 짙은 인생의 무게감을 느꼈다.

 


"미안하네. 그리고 고맙네. 내 마지막 부탁을 들어줘서... 사신이라는 게 생각보다 꽉 막힌 자들은 아닌가 보구먼..."

 


"하하하... 뭐 개중에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애들도 있지만 말이지... 마치 우리 상사처럼..."

 


코마치는 이런 분위기가 불편하다는 듯 일단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난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되었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그 말의 의미를 이제서야 알 것 같구먼... 눈물 흘릴 일도 많고 한숨 쉴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일세..."

 


노인은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는 몸을 일으켰다.

 


"히데오, 아키히로. 나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네. 하나코, 임자... 지금 만나러 가네..."

 


노인의 말에 화답하는 것은 찌르르 찌르르 시끄럽게 우는 매미들 뿐이었지만 노인의 표정은 아까보다는 한결 가벼워 보였다.

 


애써 노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던 코마치가 다시금 입을 뗐다.

 


"그럼 그... 당신은 이제 명계로 가게 될거야, 오늘 삼도천 뱃사공은 내가 아니라 다른 녀석이 하는 날이니까 나는 삼도천까지만 안내해줄거고. 그 녀석은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해서 나한테 했던 것처럼 하면 큰일 날... 아차, 내가 이런 말 했단건 걔한테 비밀이야~"

 


코마치의 농담에 노인은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가자구, 삼도천까지 가면서 이 몸이 아까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어떻게 설계를 했는지 그 천재적인 전략을 해설 해 줄테니까!

 


사신과 함께 인생의 종막극으로 출발하는 노인의 발걸음이 가볍게, 점차 희미해져 갔다. 마치 인생의 괴로움과 무거움을 다 내려놓았다는 듯이...

 

 

 


"그럼, 사자(死者)의 영혼이 삼도천에 37분 6초 늦게 도착했다는 내막은 그게 다입니까, 코마치."

 


죽은 자의 죄업으로 쌓아올렸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높다랗고 붉은 천장 아래, 좌우로 지옥의 흉수들이 조각된 석상 사이로 근엄하게 자리잡은 커다란 염마의 옥좌.

 


그 옥좌의 주인, 낙원의 최고 재판장 시키에이키 야마자나두가 한쪽 눈을 찡그린 채로 회오의 봉을 입에 댄 채 다시금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저번의 근무태만 사건보다는 일리가 있는 변명입니다만, 우리는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그 혼의 죄업이 더욱 무거워 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직접 영혼의 죄업을 심판하지 않는다고 그 규율에서 자유롭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이고... 그럴리가요 시키에이키님! 그냥 단지 죽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장기 한판만 두고 싶다고 해서 그걸 들어준 것 뿐입니다! 제가 그 사람과 무슨 연이 있을리도 없고 그냥 적선 한푼 해 준거랑 비슷한겁니다! 우리야 뭐 영생을 살지만 인간들은 길어봤자 고작 100년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그... 얼마였죠? 37분 5초? 6초? 정도 더 살고 싶다는데... 이 너무나도 착한 제 마음이... 움직여 버린거 아니겠습니까~"

 


한 두번이 아니라는 듯 시키에이키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나긋이 말했다.

 


"평소처럼 경위서나 작성해오십시오. 그럼 이상."

 


"네..."

 


코마치는 힘이 빠진 채로 대답하고는 시비곡직청 본관의 문을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피안화가 짙게 깔린 명계, 멀리서 삼도천의 안개가 자욱하게 보이는 나무 틈새

 


그 나무에 걸쳐놓은 자신의 낫을 될대로 되라지 라는 심정으로 다시 들쳐메는 코마치였다.

 


'37분 6초에 경위서 한장이라...'

 


코마치는 눈을 살며시 감고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은 교환이군...'


죽림을 본 적이 있는가?

 

 

죽림을 보면 '빽빽하다' 라는 말이 이 광경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 많은 대나무와, 대자연의 군세라는 말이 어울리는 드넓고 푸른 자태에 보는 이를 압도시키지만

 

 

우거진 댓잎이 만들어낸, 공포감을 유발시키지만 아름다운 금단의 과실같은 푸르스름한 어둠에 홀려 손을 뻗어 걸어나가면, 사람은 나무가 품고 있는 자연의 향기에 매료되어 칠흑색 대자연의 포근한 품을 느끼며 죽림의 그림자 사이를 달려나가는 한마리의 길 잃은 늑대가 된다.

 

 

그래서 환상향 주민들은 죽림을 미혹(迷惑)의 죽림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척락실로의 사신 오노즈카 코마치는 바로 이 미혹의 죽림 속에서 두 팔을 벌리고 서서 한 껏 숨을 들이켰다.

 

 

이따금씩 불던 바람이 타이밍 좋게 불어온다. 코마치는 자신의 붉은 머릿결이 선선한 바람에 흩날리자 전신 곳곳의 묵은 체온이 시원한 바람으로 식혀지는 상쾌함이 느껴졌고, 풀내음이 코를 간질이자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오직 자연만이 선물할 수 있는 해방감에 쾌감마저 느껴졌다. 온 몸으로 바람을 맞이하는 코마치는 머얼리서 보면 마치 한 송이의 피안화 같았다.

 

 

"정말 분위기 좋은 곳이야... 할 수만 있다면 병 속에 담아가고 싶을만큼 공기도 정말 깨끗하고... 이 공기를 담아가서 팔면 얼마쯤 받으려나..."

 

 

그리고 코마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심호흡을 했다.

 

 

"하나만 빼면 다 좋은데 말이지..."

 

 

그렇다.

 

 

"여기가 대체 어디쯤이냐고!!!!!!!"

 

 

코마치는 미아가 되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때는 아침 7시. 태양이 이제 막 새벽을 걷고 나와 아침의 빛을 비추는 기분좋은 토요일 오전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못잤다! 아이고... 어제 작작좀 쳐마실걸..."

 

 

흔하디 흔한 평범한 마을의 어느 외곽, 애완식물 삼아 키워진 담쟁이덩굴이 외벽을 장식한 그럭저럭 구색은 갖춘 집의 열려진 창문 사이로 햇빛이 눈꺼풀을 비춰 코마치는 잠에서 깨어났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여느 사람과 달리 숙취에 찌든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코마치였지만, 그래도 행복한 주말이 시작된다는 것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코마치는 숙취의 피로감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잠시뿐이었지만.

 

 

"오늘 아침 겸 점심은 어떻게 해결할까... 든든하게 규동이나... 아니야 역시 숙취에는 뜨끈하게 라멘이나 우동을... 어?"

 

 

무슨 음식을 먹을지 머릿속에 떠올리며 침을 삼키던 코마치의 행복한 고민은 불행하게도 코마치가 텅텅 빈 지갑을 마주하자마자 물거품처럼 날아가버렸다.

 

 

"아니... 왜... 왜 없지? 왜... 여보세요? 사신이 곡할 노릇이네... 분명 어제까지는..."

 

 

텅 빈 지갑에게 죄를 추궁하듯 이리보고 저리보고 뒤집어서 탈탈 털어보기도 하는 코마치였지만, 유카리의 스키마라도 열려있지 않은 이상 텅 빈 지갑에서 동전 한 닢 떨어질리가 만무했다.

 

 

"어제까지는... 어제... 어젯밤에 내가 뭘... 음... 아...?"

 

 

자신이 꺼낸 말에서 힌트를 얻어 과거의 기억을 헤짚어보자, 사치스러운 어젯밤의 일이 생각났다.

 

 

"분명... 그래 맞아... 포장마차에서 한 잔... 거기서 장어구이를 있는대로 사 먹었구나... 그리고 또 예탄정으로 가고... 거기서 또 한 잔 하면서... 하... 내가 어쩌자고..."

 

 

이마를 짚으며 다시는 생각없이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올해만 17번 째 다짐하는 코마치였지만, 후회한다고 이미 나간 돈이 돌아올리는 만무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코마치는 집에서 밥이라도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 아 맞다..."

 

 

텅 비어버린 쌀독을 보고 나서야 코마치는 집에 쌀이 다 떨어졌다는 잊고 있던 사실이 생각났다.

 

 

"하... 또.... 인가...."

 

 

집의 쌀독이 바닥을 드러낸게 한 두번이 아닌듯, 코마치는 익숙하게 사면초가의 위기를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했고,

 

 

"이번 달도 외상... 이구나..."

 

 

언제나 코마치에게 답은 하나뿐이었다.

 

 

햇빛이 따사로이 얼굴을 감싸는 기분 좋은 아침이었음에도, 코마치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체면을 지키며 떳떳하게 굶어 죽는 것보단 알량한 자존심을 굽혀 배를 곯는 것을 면하기를 택한 코마치였지만, 그래도 엄연히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물건을 나중에 돈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역시 코마치에게도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이제는 진짜 가계부를 써야겠다, 다이어트를 시작해야겠다, 시키에이키님의 귓가에 이 부끄러운 사실이 퍼지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다 해야겠다. 등 코마치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코마치의 발걸음이 닿은 장터는 시끌벅적했다.

 

 

올해에만 영나암에 화재가 9번째 났다는 등, 명련사에 누군가가 불을 지르려다가 잡혀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는 등,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며 평소처럼 사람 냄새가 풍기는 장터였다.

 

 

"그래도 이렇게 사람 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것 같으려나..."

 

 

코마치는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이번에도 쌀가게집 다나카씨에게 허리를 숙이러 가려는 찰나,

 

 

"아니 죽순이 왜 이렇게 비싸? 이거 순 바가지 아녀?"

 

 

"아이고 이 사람아, 올해 가물어서 죽순이 흉작인거 몰러? 요상허게도 올해 초부터 유난히 덥더니만... 벌레도 드글드글하고..."

 

 

코마치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대화가 귓가에 들어왔다.

 

 

'뭐...뭐라고? 죽순이 뭐가 어째...?'

 

 

구면인지 초면인지 모를 두 사람이 얼굴이 벌개진 채로 옥신각신하며 죽순을 놓고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의 근원지를 코마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아저씨들 안녕하세요!"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가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아이고, 사신 처자 아녀? 여긴 웬일이래?"

 

 

"하하하... 별 다른 일은 아니고요, 그냥 쉬는 날인 겸 둘러보러 왔죠..."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서 사신이 대화에 끼어드는 어찌보면 섬뜩한 광경이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코마치와 대화를 나누었다.

 

 

"아, 그건 그렇고요. 죽순이 지금 얼마에요?"

 

 

죽순 값을 흥정하던 아저씨가 분통이 터진다는 듯 한마디 거들었다.

 

 

"죽순이 지금 금값이여, 금값!"

 

 

"죽순이 지금 한 묶음에 15전이여... 올해 얼마 나오지도 않았으니까 이해좀 해주쇼..."

 

 

15전이라. 코마치의 기억이 맞다면 작년에는 분명 10전 즈음 이었을 것이다. 1년 새에 절반 정도 오른 셈이다.

 

 

그렇다면...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감? 얼마나 사실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급한일이 생겨서 먼저 가볼게요! 안녕히계세요! 많이파세요!!!"

 

 

"어디 가는거여!!! 코마치? 코마치!!!"

 

 

손님인줄 알았을 사람을 애타게 붙잡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코마치는 미혹의 죽림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하여 이 햇빛 한 두점 드는 미혹의 죽림에서 코마치는 본인의 육감을 맹신, 아니 과신하며 빛이라는 부모를 찾는 불운한 미아가 되어 대나무 사이를 헤매게 된 것이다.

 

 

"아이고 미치겠네... 죽순은 고사하고 이거 무사히 오늘 안에 나갈 수는 있나... 내 아까운 주말이..."

 

 

코마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웠다.

 

 

"이번엔..."

 

 

코마치가 나뭇가지를 바닥에 세우자, 나뭇가지가 동쪽으로 쓰러진다.

 

 

"이쪽이군..."

 

 

코마치는 또 한번 한숨을 내쉬며 나뭇가지가 점지해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시키에이키님이 이 상황을 보면 뭐라고 하셨을까..."

 

 

"코마치, 시비곡직청에서 외부활동이 잦은 당신이 타인의 귀감이 되지는 못할 망정 죽림에서 길을 잃는 추태를 보이다니, 정말 흑입니다 흑. 반성하도록 하세욧."

 

 

코마치는 자신의 상사를 따라하고는 연기력이 마음에 들었는지 풉 하고 웃었다. 마냥 걷기는 심심했나 보다.

 

 

"에휴... 시키에이키님이 와서 한 시간동안 이런 설교 해도 좋으니까 와서 구해줬으면 좋겠구만..."

 

 

이런 저런 혼잣말 겸 헛소리를 하던 코마치는

 

 

"...라니까... 정말..."

 

 

무언가 사람의 육성 같은게 자신의 귀를 간질이는게 얼핏 느껴졌다.

 

 

"아... 이제 하다하다 환청까지 들리는구만... 아니면 진짜 시키에이키님이 구하러 와준... 그럴리가 없지..."

 

환청으로 치부하는 코마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람의 육성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았어.. ...만이야 정말..."

 

 

"이... 이건..."

 

 

활력을 잃어가던 코마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잘못 들은게 아니야! 진짜 사람의 목소리야! 내가 평소에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신께서 내게 구원의 목소리를 내려주신거야! 분명 이쪽에서 들렸어!"

 

 

목소리가 들리던 쪽으로 곧장 달려가기 시작한 코마치는 머지않아 점차 밝아지는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죽림을 벗어난 코마치의 눈에는 대나무로 둘러싸인 가운데 텅 빈 공터 위에 언제 지어졌을지 모를 허름한 집 한채 위에 앉아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고,

 

 

'서당 선생 케이네랑 시비곡직청 일급 관리 대상인 모코우잖아? 근데... 어...? 읍!!!'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광경을 보게 된 코마치는 반사적으로 놀란 비명을 지르려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카미시라사와 케이네와 봉래인 후지와라노 모코우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청마루에 앉아

 

 

서로 마주앉아서

 

 

입을 맞추고

 

 

있었다.

 

코마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나무를 엮어 만들어진 외벽에 몸을 수그리고 나뭇대 틈 사이로 관능적인 사랑이 불타는 순간을 계속 지켜봤다.

 

 

두 연인은 둘만의 시간과 서로의 맛을 음미하듯 눈을 감은 채로 한 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모코우가 먼저 못 참겠다는 듯 먼저 혀를 집어넣고는 케이네의 입 안쪽 이곳 저곳을 간질였다.

 

 

그러고는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혀를 서로의 입 안에서 빙그르르 굴리다가 동시에 살며시 눈을 뜨고는 입을 떼자 진하게 늘어진 타액이 거미줄처럼 서로의 혀에 얽혀 있었다.

 

 

'우와... 저 두 사람... 아니 한 쪽은 요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둘이 그렇고 그런 관계였구나...'

 

 

마음 속으로는 길을 물어보고 싶지만, 뭔가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진 않은 생각에

 

 

코마치는 수그리고 있던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건 코마치의 기억에 평생 남을 오판중 하나가 되었다.

 

 

'어어... 이거 너무 오래 이러고 있었나... 발이 왜 저려? 하필 지금...'

 

 

한 자세를 오래 잡고 있으면 응당 쥐가 나기 마련이다.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코마치의 몸은 그 오랜 시간을 버틸 정도로 단련되진 않았고,

 

 

코마치는 누군가와 닭싸움이라도 하려는 것 처럼 쥐가 난 자신의 발을 움켜쥐다가는

 

 

'어어... 어랍쇼...?'

 

 

중심을 잃고는 끝내 보기좋게 넘어졌다.

 

 

쿠당탕 하는 큰 소리를 내며.

 

 

"아야야... 아... 큰일났네... 아... 어... 헤헤헤.... 안녕하세요?"

 

 

둘만의 밀회를 즐기던 두 사람의 시선은 순식간에 코마치의 당황한 표정에 내리꽂혔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본능적인 비명을 먼저 지른 것은 케이네였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악!"

 

 

연두빛 바람 소리만이 들리던 죽림을 사람의 육성이 메우고,

 

 

어디에 숨어있었을지 모를, 잔잔한 일상의 휴식을 방해받은 새들이 불쾌한 인기척에 놀라 하늘 높이 달아났다.

 

 

"아.. 아니... 잠깐만! 나는 그냥 길을 잃어서 우연히... 내가 무슨 관음증이나 그런게 있는것도 아니고... 어? 어...? 으아악!!"

 

 

정말로 본의가 아니었던 불의의 사고를 어떻게든 수습해보려는 코마치의 해명은 모코우가 날린 불똥을 피하느라 제대로 맺어지지 못했다.

 

 

"죽일거야... 죽여버릴거야... 죽일거야!!! 죽여버릴거야!!!"

 

 

모코우가 날린 불덩어리는 코마치의 게다 옆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고 코마치의 머리 위를 응당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듯 화르륵 타는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다.

 

 

"으악!! 으아악!! 살려줘! 살려줘!!! 불이야!!"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둘만의 비밀을 알아버린 비운의 목격자의 입을 영원히 열리지 않게 하려는 모코우를 케이네가 진정시키고 분위기가 잠잠해진건 대략 한시간 뒤였다. 그 동안 코마치의 옷이 불에 타고 그을리며 뜻하지 않은 수난을 겪은건 말 할 필요도 없었고.

 

 

"그래서... 여기까진 왜 온거야? 죽림에서 길 잃고 죽은 사람이라도 있었어? 아니면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대나무숲 속에 발설한 어느 동화 속의 신하처럼 상사에 대한 울분을 남몰래 토해내러 오기라도 한거야?"

 

 

아직은 얼굴이 새빨간 케이네였지만,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어... 그건 말이지..."

 

 

코마치가 오늘 하루 있었던 수난을 설명하자, 모코우가 아까까지의 죽일듯 한 기세는 어디 갔는지 쾌활하게 웃었다.

 

 

"이야... 어떻게 죽순값이 올랐다고 그걸 캐서 팔 생각을하냐? 여러가지로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그리고 세상에는 상도덕이란게 있는 법인데, 정말로 그걸 캐와서 판다고 하면 사람들이 너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하하하... 원래 배고파서 눈이 돌아가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법이야..."

 

 

코마치가 억지로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건 그렇고, 길을 잃어서 이렇게 됐다니 어쩔 수 없지... 옷 값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내가 좀 도와주면 되려나. 잠깐만 있어봐."

 

 

모코우는 방 안에 들어가서는 종이와 필통을 꺼내오더니, 붓을 꺼내들고는 종이에 슥슥 죽림의 지형지물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마치 죽림의 모든것은 다 꿰고 있다는 듯이.

 

 

"자, 바보가 아닌 이상 여기 내가 알려준대로 가기만 하면 다시 마을이 보일거야."

 

 

"아이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오늘 일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을거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그 말을 들은 모코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뭐, 내가 사신하고는 연을 맺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연이 닿으니 좀 재미있긴 하네... 역시 인생은 살아도 살아도 예측불허라니까..."

 

 

"하하... 인생에 대한 그런 감상평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번 건 뭔가 느낌이 다르군... 아무튼 뜻하지 않게 방해해서 미안했고, 그럼... 방해꾼은 이만 가보도록 할게."

 

 

"좋아, 조심히 가라고, 정말로 이번엔 길 잃어버리지 말고!"

 

 

뒤돌아 걷던 코마치는 걱정 말라는 듯 한쪽 손을 들어 대답을 대신했다.

 

 

모코우는 석양빛을 받으며 서서히 멀어져 가는 사신을 보며 케이네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럼... 이어서 마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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