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죄업으로 쌓아올렸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높다랗고 붉은 천장 아래, 좌우로 지옥의 흉수들이 조각된 석상 사이로 근엄하게 자리잡은 커다란 염마의 옥좌.
그 옥좌의 주인, 낙원의 최고 재판장 시키에이키 야마자나두가 한쪽 눈을 찡그린 채로 회오의 봉을 입에 댄 채 다시금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저번의 근무태만 사건보다는 일리가 있는 변명입니다만, 우리는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그 혼의 죄업이 더욱 무거워 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직접 영혼의 죄업을 심판하지 않는다고 그 규율에서 자유롭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이고... 그럴리가요 시키에이키님! 그냥 단지 죽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장기 한판만 두고 싶다고 해서 그걸 들어준 것 뿐입니다! 제가 그 사람과 무슨 연이 있을리도 없고 그냥 적선 한푼 해 준거랑 비슷한겁니다! 우리야 뭐 영생을 살지만 인간들은 길어봤자 고작 100년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그... 얼마였죠? 37분 5초? 6초? 정도 더 살고 싶다는데... 이 너무나도 착한 제 마음이... 움직여 버린거 아니겠습니까~"
한 두번이 아니라는 듯 시키에이키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나긋이 말했다.
"평소처럼 경위서나 작성해오십시오. 그럼 이상."
"네..."
코마치는 힘이 빠진 채로 대답하고는 시비곡직청 본관의 문을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피안화가 짙게 깔린 명계, 멀리서 삼도천의 안개가 자욱하게 보이는 나무 틈새
그 나무에 걸쳐놓은 자신의 낫을 될대로 되라지 라는 심정으로 다시 들쳐메는 코마치였다.
'37분 6초에 경위서 한장이라...'
코마치는 눈을 살며시 감고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은 교환이군...'
죽림을 본 적이 있는가?
죽림을 보면 '빽빽하다' 라는 말이 이 광경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 많은 대나무와, 대자연의 군세라는 말이 어울리는 드넓고 푸른 자태에 보는 이를 압도시키지만
우거진 댓잎이 만들어낸, 공포감을 유발시키지만 아름다운 금단의 과실같은 푸르스름한 어둠에 홀려 손을 뻗어 걸어나가면, 사람은 나무가 품고 있는 자연의 향기에 매료되어 칠흑색 대자연의 포근한 품을 느끼며 죽림의 그림자 사이를 달려나가는 한마리의 길 잃은 늑대가 된다.
그래서 환상향 주민들은 죽림을 미혹(迷惑)의 죽림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척락실로의 사신 오노즈카 코마치는 바로 이 미혹의 죽림 속에서 두 팔을 벌리고 서서 한 껏 숨을 들이켰다.
이따금씩 불던 바람이 타이밍 좋게 불어온다. 코마치는 자신의 붉은 머릿결이 선선한 바람에 흩날리자 전신 곳곳의 묵은 체온이 시원한 바람으로 식혀지는 상쾌함이 느껴졌고, 풀내음이 코를 간질이자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오직 자연만이 선물할 수 있는 해방감에 쾌감마저 느껴졌다. 온 몸으로 바람을 맞이하는 코마치는 머얼리서 보면 마치 한 송이의 피안화 같았다.
"정말 분위기 좋은 곳이야... 할 수만 있다면 병 속에 담아가고 싶을만큼 공기도 정말 깨끗하고... 이 공기를 담아가서 팔면 얼마쯤 받으려나..."
그리고 코마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심호흡을 했다.
"하나만 빼면 다 좋은데 말이지..."
그렇다.
"여기가 대체 어디쯤이냐고!!!!!!!"
코마치는 미아가 되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때는 아침 7시. 태양이 이제 막 새벽을 걷고 나와 아침의 빛을 비추는 기분좋은 토요일 오전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못잤다! 아이고... 어제 작작좀 쳐마실걸..."
흔하디 흔한 평범한 마을의 어느 외곽, 애완식물 삼아 키워진 담쟁이덩굴이 외벽을 장식한 그럭저럭 구색은 갖춘 집의 열려진 창문 사이로 햇빛이 눈꺼풀을 비춰 코마치는 잠에서 깨어났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여느 사람과 달리 숙취에 찌든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코마치였지만, 그래도 행복한 주말이 시작된다는 것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코마치는 숙취의 피로감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잠시뿐이었지만.
"오늘 아침 겸 점심은 어떻게 해결할까... 든든하게 규동이나... 아니야 역시 숙취에는 뜨끈하게 라멘이나 우동을... 어?"
무슨 음식을 먹을지 머릿속에 떠올리며 침을 삼키던 코마치의 행복한 고민은 불행하게도 코마치가 텅텅 빈 지갑을 마주하자마자 물거품처럼 날아가버렸다.
텅 빈 지갑에게 죄를 추궁하듯 이리보고 저리보고 뒤집어서 탈탈 털어보기도 하는 코마치였지만, 유카리의 스키마라도 열려있지 않은 이상 텅 빈 지갑에서 동전 한 닢 떨어질리가 만무했다.
"어제까지는... 어제... 어젯밤에 내가 뭘... 음... 아...?"
자신이 꺼낸 말에서 힌트를 얻어 과거의 기억을 헤짚어보자, 사치스러운 어젯밤의 일이 생각났다.
"분명... 그래 맞아... 포장마차에서 한 잔... 거기서 장어구이를 있는대로 사 먹었구나... 그리고 또 예탄정으로 가고... 거기서 또 한 잔 하면서... 하... 내가 어쩌자고..."
이마를 짚으며 다시는 생각없이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올해만 17번 째 다짐하는 코마치였지만, 후회한다고 이미 나간 돈이 돌아올리는 만무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코마치는 집에서 밥이라도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 아 맞다..."
텅 비어버린 쌀독을 보고 나서야 코마치는 집에 쌀이 다 떨어졌다는 잊고 있던 사실이 생각났다.
"하... 또.... 인가...."
집의 쌀독이 바닥을 드러낸게 한 두번이 아닌듯, 코마치는 익숙하게 사면초가의 위기를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했고,
"이번 달도 외상... 이구나..."
언제나 코마치에게 답은 하나뿐이었다.
햇빛이 따사로이 얼굴을 감싸는 기분 좋은 아침이었음에도, 코마치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체면을 지키며 떳떳하게 굶어 죽는 것보단 알량한 자존심을 굽혀 배를 곯는 것을 면하기를 택한 코마치였지만, 그래도 엄연히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물건을 나중에 돈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역시 코마치에게도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이제는 진짜 가계부를 써야겠다, 다이어트를 시작해야겠다, 시키에이키님의 귓가에 이 부끄러운 사실이 퍼지지 않도록 갖은 노력을 다 해야겠다. 등 코마치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코마치의 발걸음이 닿은 장터는 시끌벅적했다.
올해에만 영나암에 화재가 9번째 났다는 등, 명련사에 누군가가 불을 지르려다가 잡혀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는 등,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며 평소처럼 사람 냄새가 풍기는 장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