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아카이브

성덕태자와의 인터뷰 본문

Touhou Project 백업/팬픽

성덕태자와의 인터뷰

루뇨 리버 2023. 11. 17. 14:57

**들어가기 앞서: 등장인물의 사상은 작가의 사상과 별개이며 작가는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시작-

 

아야: 반갑습니다. 저는 붕붕마루신문의 리포터 겸 사진사 겸 편집자인 깨끗하고 올바른 샤메이마루 아야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특별한 게스트를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미코: 반갑습니다. 저는 신령묘의 선임 도사 토요사토미미노 미코입니다. 흔히 쇼토쿠 태자라고 알려져 있죠.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야: , 그럼 바로 시작해도 문제 없으시죠?

 

미코: 물론이죠.

 

아야: 좋습니다. 가장 먼저 오늘 이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유를 여쭙고 싶네요.

 

미코: 붕붕마루신문은 그 평판과는 별개로 판매부수로는 수위를 다투는 환상향 최대 규모의 언론이지요. 제 생각을 만방에 드러내고 이를 통해 오늘날 환상향의 병폐를 공론화해 더 나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야: 그럼 자기광고 하러 나오셨다고 봐도 되나요?

 

미코: , 그것도 포함해서. ,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아야: 아야야 저희 신문의 진가를 알아봐주시다니 과연 그 쇼토쿠 태자로군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호외로 전 환상향에 뿌려드릴 테니까요. 분명 나중에 오늘 나오신 걸 최고의 선택이라고 뿌듯해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미코: 그렇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아야: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코씨는 평소에 '인간을 위해서'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요.

 

미코: 그게 제 핵심 주장이니까요.

 

아야: 어떤 연유로 그런 발언을 강조하시는 건지?

 

미코: 일단 제가 처음 부활했을 때 얘기를 해보죠. 제가 1400년 만에 눈을 뜨고 나왔을 때 저는 여러모로 달라진 세상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많은 것이 생경했습니다. 그 중에는 인간과 요괴의 다툼이 사라졌다는 것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의 합의가 아닌 요괴에 대한 인간의 굴종과 복속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요괴가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평범한 인간들은 각종 인권 침해와 더 나은 삶에 대한 기회 박탈이라는 심대한 피해를 입고 있죠. 이런 인간에 대한 박해는 온당치 못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환상향을 인간을 위해서더 나은 공간으로 개혁할 필요성을 환기하기 위한 구호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야: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 생각은 그러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온 신념인가요?

 

미코: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실질적으로 개선된 게 없으니까요.

 

아야: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미코: ?

 

아야: 이 문제는 전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애초에 왜 환상향이 존재해야 하는 걸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근대성에 사라져 가던 존재를 위한 방주로서 이러한 장소가 필요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인간마을은 왜 필요한 것일까요? 마찬가지로 일정량의 인간은 환상향에 의탁한 존재의 존속을 위해 필요하니까요.

 

미코: 그러면 인간마을에서 태어난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 요괴에게 잡아 먹힐지 모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너무 불쌍한데요.

 

아야: 바깥세계에서 감염병에 걸려 죽는 노인이나, 건설 현장의 사고로 죽는 인부, 테러에 휘말려 죽는 관광객, 기아에 시달리다가 아사하는 아동에게도 그와 같은 온정을 보여주지 않잖아요?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인간마을의 인간들만 특별히 더 불쌍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죠.

 

미코: 그런 비극에 제가 가슴 아파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들을 동정하고 연민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제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반면에 환상향 내부 인간마을의 인간 처우에 관한 문제는 제 손이 닿는 영역이죠. 저는 제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겁니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해서 작은 문제를 내버려두는 것이 정의는 아니죠.

 

아야: 인간과 요괴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면 아마 인간을 선택하겠죠?

 

미코: 질문의 의도가 뭡니까?

 

아야: 미코씨는 요괴보다 인간을 더 귀하게 여기시지 않냐는 물음입니다.

 

미코: 저는 인간 태생이고 제가 살던 시대상은 요괴와 인간의 살벌한 대립이 있던 때입니다.

 

아야: ‘인간을 위해서라는 건 요괴는 안 위한다는 뜻 아닙니까?

 

미코: 인간이 약자고 요괴가 강자인데 요괴에 힘을 실어주면 무슨 변화가 있겠습니까?

 

아야: 그게 잘못됐습니다. 요괴는 강자가 아닙니다. 요괴가 강자였다면 바깥세계에서 도망쳐 이렇게 환상향에 숨어들 필요도 없었겠지요. 그런 점에서 오히려 요괴야말로 약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상향 내부에서 요괴가 주도적 지위를 가지는 것은 바깥세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요괴할당제 같은 적극적 우대조치라고 할 수 있겠죠. 인간과 요괴 전체를 고려한다면 지금의 균형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균형인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인간에게 무게 추를 실어주자는 주장은 오히려 역으로 다분히 인간 편향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미코: 그거야말로 요괴 편향적인 시선이 아니고요?

 

아야: 인간과 요괴를 동등하게 본다면 어느 한쪽의 이득은 어느 한쪽의 피해로 귀결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미 제로섬사회인 셈이지요. 그 말인즉슨 우리는 이미 파레토최적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겠죠. 현재의 환상향이야말로 모두에게 최적이며 최선이며 최상의 상태라고 할 수 있고요.

 

미코: 그렇게 단순화한 도식으로 결론을 산출하는 건 논리적 비약 아닙니까?

 

아야: 인간과 요괴의 이분법과 언더도그마야말로 단순화한 도식이라고 할 수 있겠죠. 환상향 생태계의 아랫물에는 흔히 자코라고 불리는 잡스러운 요괴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들은 하쿠레이 무녀는 물론이고 인간마을 퇴마사한테도 숱하게 퇴치당하며 변변한 의식주도 없이 구차하고 추레하게 살아가지요. 인간마을의 인간이 과연 이들보다 고난 가득한 형편에 놓여 있을까요? 환상향 곳곳 각양각색의 요괴들은 그 처지도 처우도 각자의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거기에 인간과 요괴 말고도 신, 신령, 망령, 선인, 요수, 요정 등 다양한 존재가 환상향에 거주한다는 사실도 빼놓으면 안되죠. 이들을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뭉뚱그려 요괴라 부르는 것은 편의주의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이거야말로 실정에 들어맞지 않는 이분법적 사고라고 할 수 있겠죠.

 

미코: 하지만 인간은 환상향에서 신분 상승할 사다리가 없습니다. 환상향의 유력자 중 인간 출신인 자가 달리 누가 있습니까?

 

아야: 하쿠레이 신사의 무녀요.

 

미코: 그녀는 요괴의 승인을 받고 선출됐지요.

 

아야: 모리야 신사의 카제하후리도 있고요.

 

미코: 자기가 모시는 신들에게 신내림을 받고 통제받는 처지죠.

 

아야: 홍마관의 메이드장은요?

 

미코: 그 자는 아예 악마의 하수인이잖아요.

 

아야: 키리사메 마리사는요?

 

미코: , 마리사. 그 한 명은 예외네요. 그래도 마리사가 개천에서 용 난 경우지 그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잖아요?

 

아야: 요괴가 권력을 잡는 게 그렇게 문젯거리인가요? 먹잇감은 사냥꾼을 증오하지만 사냥꾼은 먹잇감을 사랑합니다. 배타적인 인간에 비해 오히려 요괴는 관용적이라고 할 수 있죠. 어차피 사냥꾼에게는 먹잇감이 필요합니까요. 먹잇감이 폐사하면 오히려 사냥꾼이 곤란하지요. 인간은 요괴에게 이기려 하겠지만 요괴는 인간과 공존하려 할 겁니다. 그러니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게 더 나은 방향 아니겠습니까.

 

미코: 강자의 자비에 매달리기라니 퍽이나 안전한 방법이네요.

 

아야: 아니면 말고요.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할까요?

 

미코: 그러죠. 예상보다 질문공세가 좀 피곤하네요.

 

아야: 아야야야야, 이거 실례였을까요. 악감정은 없었으니 애교로 봐주세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보죠. 미코씨 본인의 메리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미코: 논어에는 군군신신부부자자라는 경구가 있죠. 각자의 적성에 맞춰 적재적소의 위치에 임해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라는 말입니다. 그럼으로써 사회 전체는 최적화된 능률로 향상됩니다. 군주의 직위를 감당하는 자는 군주의 자질을 두루 갖춰야 할 것이며 천부적인 위정자는 그에 알맞은 지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는 능률적이고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아야: 그게 왜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미코: 인간이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모든 활동을 가리켜 경제라고 하지요. 인간은 자급자족하는 생활로부터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에 특화되고 서로의 생산품을 교환하면서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향의 생활양식을 확립해나갔죠. 서로의 결여를 서로의 잉여로 메워 모두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면서 더욱 풍요로운 삶을 지향하게 된 것이죠. 이런 변화는 인간사회가 가지는 개연성이 흘러가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필연이며, 이는 곧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서술할 수 있겠죠.

 

아야: 일리가 있네요.

 

미코: 직책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은 사람은 더 높은 위치를 자연스럽게 찾아가고 그보다 못한 사람은 더 높은 위치를 자연스럽게 찾아가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모두들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고 사회는 합당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아야: 그럴싸하군요.

 

미코: 인사권자가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고 적합한 역할을 부여하는 사려 깊은 용인술을 지녀야 하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용인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사람을 판별하는 안목과 알맞은 대우를 해주면서 공명정대한 논공행상의 센스를 갖춘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야겠지요.

 

아야: 인사권자의 용인술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미코: 그렇죠. 인사가 만사라지 않습니까. 사람은 아무도 섬이 아닙니다.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 중 자신과 관계없는 일은 없습니다. 청요직에 누가 자리잡느냐는 사안은 말할 것도 없지요.

 

아야: 더 능률적인 조직이 되기 위해서요?

 

미코: 네 맞아요. 능률적이면서도 일치단결된 조직을 위해서죠.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개인은 집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사람들을 한 곳에 많이 모아둔다고 집단이 형성되는 건 아니죠. 요괴의 산에 함께 사는 텐구와 신이 하나의 집단을 이뤘다고 하지는 않잖아요.

 

아야: 확실히 모리야 신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도 텐구와는 엄연한 남남이지요.

 

미코: 하나의 집단을 유지하고 통솔하는 것도 기술이죠. 생각보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야: 그게 간단하다고요?

 

미코: . 먼저 하나의 집단이라는 통일된 정체성 내지 동질감을 구성원에게 부여합니다. 또 그 집단이 추구해야 할 가치, 목적, 대의명분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최상부에서 말단까지 지시가 전달될 수 있게 하는,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통해 유기적으로 동작하는 체계적인 조직을 구축합니다. 그 외 내부 부조리를 개선한다던가 적정 보수를 지급한다던가 자잘한 과제도 있지만 중요한 건 리더의 역할입니다. 리더는 집단 내부의 의견을 수렴하고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상호 간의 이익다툼과 이견을 조율하고 자신이 그리는 청사진으로 그들을 납득시켜 이끌어가 화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좁게는 자기 측근부터 넓게는 집단 전체에 이르기까지 스스로가 리더의 자리에 걸맞음을 끊임없이 증명하며 지지를 확보해야 합니다. 관중 앞의 배우 같이 산하의 심복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점을 짚는 쇼맨십으로 진심 어린 호응과 함께 그들의 사기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요약하자면 리더에게는 비전, 리더십, 카리스마가 있어야 합니다.

 

아야: 그래서 본인이 그 적임자다?

 

미코: 제가 아니면 그 누가 있겠습니까? ()의 창시자인 이 토요사토미미가 아니라면 그 누가.

 

아야: 모르겠네요 도전자가 있을지 없을지. 혹시 이 인터뷰를 나중에 읽는 독자 중에 내가 도전하겠다는 분들은 붕붕마루신문으로 연락주세요.

 

미코: 아야씨도 요괴 최대의 사회를 이루는 텐구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단합되고 조직화된 집단의 위력을 체감하지 않나요?

 

아야: 예 물론입니다. 그 안팎으로 이리저리 치이는 개인의 말 못할 고충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고요.

 

미코: 공공의 선보다 사사로운 이득이 우선하지는 않지요.

 

아야: 그나저나 제가 듣기로는 미코씨의 생각은 도가의 무위지치보다는 법가의 법치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

 

미코: 좋은 질문이군요. 아야씨는 아노미가 만연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무위자연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야: 아닌가요?

 

미코: 아닙니다.

 

아야: 에이 설마요.

 

미코: 아니라니까요.

 

아야: 못 믿겠는데요.

 

미코: 제가 환상향에서 세손가락 안에 드는 도사인데 제 말을 못 믿겠다고요?

 

아야: 어라, 권위에 호소하는 건가요?

 

미코: 아니, 제가 전문가인데

 

아야: 요즘 세대들은 그런 걸 꼰대라고 부른답니다.

 

미코: ……

 

아야: 아야야, 농담입니다 농담. 상세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코: 무위지치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방임주의가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여력을 남겨두라는 의미입니다.

 

아야: 오호, 어째서죠?

 

미코: 바깥세계 얘기를 해볼까요. 자본주의는 돈이 돌고 돌면서 생산성이 증대되고 경제규모가 커지는 성장을 중시합니다. 그걸 위해서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감수하는 편이지요. 그 리스크는 대표적으로 만기일에 부채를 상환 받지 못한 은행이 부도가 나서 연쇄적으로 신용이 폭발하고 유동성이 경색되고 공황이라는 최악의 불경기가 나타나고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는 경우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사태에 중앙은행은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투입하는 데 그 수단으로는 공개시장운영, 지급준비율 인하, 기준금리 인하, 양적완화 등이 있습니다.

 

아야: , 그래서요?

 

미코: 이런 다양한 통화정책을 준비해둠으로써 만일의 사태에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만약 평시에 이렇게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한다면 신용경색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때 중앙은행은 이미 낼 수 있는 카드를 모두 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수단이 없겠죠.

 

아야: 그렇겠죠.

 

미코: 혹은 현대 일본의 예시를 들 수 있겠네요. 현대 일본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2배가 넘습니다. 경기부양을 위해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투자한 액수가 무색하게 경기부양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투자의 정당성이 있었고 엔화가 기축통화에 준하게 안정적이며 국채의 대부분은 국민에게 팔았다고는 하지만 막대한 부채가 남은 게 현실이지요. 때문에 금리를 0%에 가깝게 한대도 이 이상 채권을 발행하기도 부담되고 그렇다고 빚을 갚기 위해 세금을 올리자니 어불성설입니다. 결국 가지고 있던 국가신용을 허투루 낭비하며 운신의 폭을 좁혀 스스로의 목을 조이게 된 겁니다.

 

아야: 너무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네요. 그래도 아직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이 남았잖아요?

 

미코: 냉정하게 평가하는 거죠. 어쨌든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요, 단편적인 접근이기는 하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최악을 대비해라, 그를 위해 여력을 남겨둬라. 그러기 위해 최소한의 투자만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이룬다, 그런 지극히 탁월한 수완이야말로 무위지치의 본 뜻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야: 사실 아주 기본적인 얘기를 하는 거란 말이군요.

 

미코: 기본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아야: 잘 알겠습니다. 스스로 호언한대로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셨네요. 전문가 인정합니다.

 

미코: 저는 오히려 아야씨가 던지는 예리한 질문과 날카로운 반박이 뜻밖이었네요. 당신 정도되는 인재가 왜 신문기자 일이나 하고 있는 거죠?

 

아야: 아야야, 저널리즘 무시하는 건가요. 저는 사람들이 알아야만 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인으로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답니다.

 

미코: , 죄송합니다. 딱히 신문기자란 직업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런 식견이 있으면서 파파라치처럼 가십성 가짜뉴스나 양산하는 점이 의아해서요.

 

아야: 그게 더 잘 팔리거든요.

 

미코: 와 정말요.

 

아야: 진지하게 답하자면 엄격한 연공서열이 적용되는 텐구사회의 경직되고 수직적인 조직생활의 일환이라고나 할까요? 그 전에 제 상관님이 저보다 더 유능하기도 하고요. 뭐 여차저차 하여튼 간에 신문기자는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만족하고 있답니다.

 

미코: 만족하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아야: 오 이런 벌써 시간이 다 되갑니다. 서둘러야겠군요.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미코씨는 현재 환상향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미코: 시급한 현안이라면 단연 급증한 불안정성이죠.

 

아야: 불안정성이라고요?

 

미코: 현재 환상향 체재는 취약한 위치에 놓여있으니까요.

 

아야: 아야야, 어째서죠?

 

미코: 먼저 내부적 불안요소가 있습니다. 현재 환상향은 수많은 세력들이 각자의 꿍꿍이속을 가지고 난립하고 있는 사실상의 무정부상태지요. 이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감독자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만약 환상향에서 대규모 소요사태가 발생한다면 소위 환상향의 현자라는 위인들은 이를 진정시키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아야: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분란을 조장하는 자들은 그보다 먼저 하쿠레이 무녀의 철퇴를 마주해야 할텐데요.

 

미코: 반대로 말하면 환상향의 치안유지가 고작 하쿠레이 무녀 개인에 의지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아야: 그래도 스펠카드룰이 있잖습니까?

 

미코: 그건 사회적 약속에 불과합니다. 안 지키면 손해를 볼지언정 그러한 선택지 자체가 배제된 것은 아니란 말이죠. 아야씨는 스펠카드룰 밖에서 하쿠레이 무녀와 싸울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야: 그런 경우 자체가 없도록 해야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꽁지빠지게 도망칠 겁니다.

 

미코: , 하쿠레이 무녀의 위명은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지요.

 

아야: 그녀는 키진 세이쟈의 체제 전복 시도를 보란 듯이 저지했는걸요?

 

미코: 저지해야 마땅하지요. 저지를 못했다면 지금 이렇게 편안히 있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저지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훗날 저지를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아야: 의제선정에는 동의하지만 이게 그리 시급한 문제인지는 모르겠네요.

 

미코: 사실 이건 환상향이 지나치게 붐비게 된 데에 기인합니다. 환상들이하는 존재는 누구든지 받아들인다는 무분별한 관용 정책으로 기존 질서가 흔들리는 셈이지요. 그 결과 점점 환상향은 통제불능의 미래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깥세계와의 관계설정도 중요하지요. 환상들이는 바깥세계에서 들어오는 거니까요. 큰 틀에서 보면 환상향은 일방적인 영향력을 바깥세계로부터 받고 있지요. 이런 예속적인 관계는 환상향이 가지는 몇몇 비교우위를 생각할 때 적절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야: 꽤나 구미가 당기는 소리네요.

 

미코: 외부적 불안요소도 심각합니다. 근래의 도시전설이변과 그에서 촉발된 완전빙의이변은 키신 사구메라는 달의 도시의 요인이 배후에 있던 걸로 판명되었습니다.

 

아야: 아야야, 그러고 보니 저도 그에 관해 취재하다 지옥의 여신에게 한소리 들었었죠.

 

미코: 그 얘기는 나중에 좀 자세히 듣고 싶은데, 어쨌든 외부 세력의 내정간섭에도 아무런 대응도 않는 이런 안이함과 무능력함은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강경책이든 온건책이든 실질적인 대책이 채택됐어야 했는데 유야무야 묵살해버렸죠.

 

아야: 그래도 마냥 한 게 없다고 할 수는 없죠. 명계나 구 지옥과의 친선을 유지하고 피연못지옥의 에너지자원 절반을 독점하는 협약을 체결했는데요.

 

미코: 마지막 건은 소유권은 가져와 놓고 정작 규제로 개발을 불가능하게 해놓았는데 업적이라기는 애매하죠. 어쨌든 초점을 맞출 곳은 곰비임비 대두되는 위협입니다.

 

아야: 대두되는 위협이라 한다면?

 

미코: 만연하는 염세관, 약자의 반란, 바깥세계 인간의 환상향 사보타주 기도, 달의 도시의 환상향 천도계획, 꿈의 세계의 현실 개입, 동물령의 환상향 무단침범. 제가 부활한 이후에만 벌써 여러 번 환상향의 존망을 위협할 수 있는 이변이 발생했지요. 일련의 종말론적 사태의 시사점은 환상향에 내재된 그리고 외부에서 가해지는 안보적 위협에 대응할 새로운 매커니즘을 고안할 필요성이 시급하고 중대하다는 것입니다. 이변해결사에게 모조리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할 게 아니고요.

 

아야: 진지하게 고민해볼 문제 같군요. 미코씨의 혜안을 오늘 이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피로해주셔서 귀중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거론될만한 논제들을 통찰력 있게 짚어주셨죠. 안타깝게도 이제 그만 시간이 다 되어 다음 일정에 늦지 않게 보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미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저도 오늘 예상과는 좀 달랐지만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야씨를 다시 봤네요.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데 거듭 감사드립니다.

 

아야: 저야말로 참석해주셔서 감사하죠.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미코: 수고하셨습니다.

 

아야: 수고하셨습니다.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eamshanghaialice&no=56911

'Touhou Project 백업 > 팬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팬픽... 글좀,,, 써봣습니다  (0) 2024.02.26
꿈의 흔적  (0) 2023.11.17
과거에 쓴 여러 팬픽의 후기  (0) 2023.11.17
저주받지 않았다  (0) 2023.11.17
한 잔의 가치  (0) 202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