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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리모어 오브 우사미'의 스펠카드에 대하여 본문

Touhou Project 백업/설정 탐구

'더 그리모어 오브 우사미'의 스펠카드에 대하여

루뇨 리버 2024. 3. 13. 07:48

서론

 

동방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 중 하나인 스펠카드는 세계관을 대표하는 설정이자, 불변의 화젯거리였다. 이능력 배틀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동방프로젝트에서 스펠카드는 전투의 규칙을 의미하며, 이는 스펠카드가 가장 인기있는 설정인 첫 번째 이유이다. 무력의 우열과 승패는 만인의 관심거리이기에. 그리고 스펠카드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설정 자체의 모호함이다. 동방프로젝트의 모든 게임은 상대와 전투를 치르는 배틀물이었으며, 모든 전투는 스펠카드 룰 하에 이루어졌다. 탄막의 비중이 낮은 황혼 프론티어의 격투게임에서도 이것은 변함이 없었으며, 심지어 이 클리셰의 탈피를 노린 탄막 아마노자쿠에서마저도 모든 공격 수단은 회피 불가능할지라도 스펠카드라고 분명히 명시해놓았다. 이 말은 둘도 없을 친구인 무녀와 마법사의 저녁내기와, 달에 크나큰 원한을 가진 신령의 영원한 복수극이 동일한 방법으로 치러졌다는 말이며, 스펠카드가 인간마을 길가에서나 약육강식의 지옥 축생계에서나 통용된다는 소리이다. 누구나 처음 들었을 때 의문을 품을만한 이 모호함이 스펠카드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두 번째 이유이다.

 

분명히 드러나는 점은, 스펠카드의 설정은 구문구수 등지에서처럼 폭력적인 성향을 부정하는 서술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회화에서 거리낌 없는 폭력의 형태로 보이는 두가지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 두가지 서술은 너그럽게 이야기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불친절한 설명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으며, 동방프로젝트의 2차창작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환상향을 보여주었다. 한쪽에서는 환상향의 낙원다운 평화로움에 주목해 소녀들의 밝은 세계관을 그려냈으며, 다른 쪽에서는 언뜻언뜻 드러나는 환상향의 꺼림직한 설정들에 집중하여 사실은 무서운 환상향을 그려냈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기의 모습으로 동방프로젝트를 그릴 수 있다는 점은 동방프로젝트 특유의 특징이자 장점으로 남았지만, 혹자는 이러한 느슨한 설정에 불만을 품고 동방프로젝트의 설정에 대해 논하는 것에 회의감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뜻밖에도, 더 그리모어 오브 우사미에서 신주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으며, 이 이야기가 '스펠카드가 본래 가지고 있던 의미를 무시하여 새로운 설정을 부여해 재구축하는 것을 의도'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그리우사에 대한 이야기가 기존 스펠카드가 가지고 있던 모호함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준다는 것을 알았으며, 기존에 희미하게만 잡혀있던 스펠카드의 의미를 확언해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앞으로는 스펠카드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우사를 독해하면서 이야기 할 생각이다.

 

 

본론

 

규칙이 없는 세상에서, 탄막은 넌센스이다.

더 그리모어 오브 마리사

 

 더 그리모어 오브 우사미를 설정집으로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전까지 나온 동방프로젝트의 설정집과 묶어서 비교한다면 그리우사는 큰 특이점 하나를 가진다. 바로 기승전결의 온전한 서사를 가진다는 점이다. 아큐와 마리사라는 개인의 연구서였던 구문사기와 그리마리, 그리고 대담의 기록이었던 구문구수와는 달리 그리우사에는 작은 이변이라고 칭해도 좋은 사건이 일어났으며, 다른 서브컬처의 설정집을 보더라도 일반적인 시도는 아님이 분명하다. 따라서 필자는 이 특이점에 집중한다. 이전에 보여준 그리마리같은 탄막도화집에 대한 이야기라는 이런 특이한 이야기 구조를 신주는 어째서 택했던 것일까? 

 

기승전결의 서사를 온전히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등장인물간의 갈등이 필수적이다. 특히 이런 요란한 스토리에는 더욱 그렇다. 이전의 설정집은 환상향 사람들이 스스로를 기록하는 책이었다. 구문구수의 세 종교가들은 서로를 편히 여기지 않았지만, 환상향에 사는 주민이라는 공통점에서 표면적으로는 큰 갈등 없이 대담을 이어나갔다. 그에 비해 그리우사는 바깥세계에서 온 스미레코라는 외래인으로부터 나온 축제와, 그에 불만을 가진 몇몇 요괴들이 일으키는 소란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미레코와 요괴들, 즉 환상향의 주민들간의 갈등이 이 서사를 이끌어가며, 신주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이와 매우 밀접하다.

 

"...(중략) 동물원이란거, 그런 동물들을 죽을 때 까지 길러주기 위한 시설이잖아?"

" 틀리다구 레이무, 동물원이라는 건, 보호를 명목으로 죽을 때 까지..."

 

" 그게 아니야. 동물원은 세상에 있는 진귀한 동물들이 모여있는 두근두근한 장소야. 그러니깐 환상향에 없는 동물같은 것도 볼 수 있다고."

더 그리모어 오브 우사미

 

이 갈등에 대해서는 이후에 나온 동방향림당 8화에서 더 명확히 불 수 있다. 이 대화에서 우리는 환상향과 바깥세계의 차이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다. 이제는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들은 이제는 바깥세계에선 발 붙일 곳이 없는 환상의 처지와 매우 흡사하다. 스미레코로 대표되는 바깥세계 사람들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들을 격리했으며, 그들은 요괴들처럼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자신들에게 위협되는 모든 존재를 배척하는 것, 이것이 바깥세계의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끝내 그 위협의 존재마저 잊어버린, 스미레코로 대표되는 현대인들은 편향된 인식을 보인다. 스미레코의 동물원에 대한 정의에는 오직 관찰자인 인간들의 시선만 담겨있으며,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육식동물의 위협을 잊은 채 식재료 대하듯 '진귀한' 일회용 경험으로 소모한다. 그러므로 이에 환상향의 주민인 레이무와 마리사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 쫓겨난 환상의 존재들에 대한 총체적인 폭력이기도 하며, 환상향의 몇몇 요괴들이 반감을 가질 자연스러운 이유가 된다. 

 

그렇기에 스미레코의 아이디어로 열린 불꽃놀이 축제는 동물원으로 대표되는 바깥세계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축제에 참가한 관객들은 아무런 위험 없이 축제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동물원 관람객을 닮았으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모아놓은 심사위원들은 조련사의 역할을 하며, 살의가 담기지 않은 탄막만을 강요받은 참가자들은 야성을 거세당한 야생동물과 같다. 이 축제는 따라서 환상향에서 열린 바깥세계의 축제라고 부를만한 것이다. 심사위원의 평가에서도 대회의 취지에 맞지 않는 위협적이거나 두려운 탄막은 배제되며, 보기 좋고 즐거운 탄막만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는 탄막을 '스스로 즐기기 위함'임을 말한 그리마리의 관점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며, 심사위원인 마리사조차 '미적지근한 탄막만 보고있자니 시시하다'라는 평을 남긴다. 이런 바깥세계의 축제로는 환상향을, 스펠카드를 온전히 담지 못하는 것이다.

 

이 축제를 세이자와 신묘마루가 한바탕 뒤집어놓으면서 이야기는 하이라이트에 다가간다. 위험에 빠질 사람들을 보호하려 기민하게 움직이는 주인공들과 달리, 스미레코는 한가하게 탄막에 대한 평가를 계속하며 바뀐 상황에 전혀 대처하지 못한다. 이는 눈 앞의 요괴에게 잡아먹힐 때 까지 자신의 처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환상들이한 외래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위협을 거세당한 바깥세계의 맹점을 보여준다. 바깥세계의 환상에 대한 맹목적인 배제는 바깥세계 사람들 스스로를 기형적으로 만들었다. 환상향에서 요괴들이 탄막의 형태로 가하는 위협은 살의가 있기에 아름다우며, 아름다움으로써 삶의 실감을 느끼게 한다. 많은 외래인들이 눈 앞의 위협도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은 많은 현대인들이 그런 아름다움의 부재로 현실에서 부유해서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신주 나름의 진단이다.

 

그에 비해 후반부에 참가한 요괴들은, 토라마루 쇼나 카기야마 히나와 같은 인간에게 우호적인 캐릭터마저도 위협적인 탄막을 날리며 즐거워한다. 그 이유는 첫번째로 환상소녀들은 누구든지 탄막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이것이 외래인이 계획한 이 대회를 부수는 탄막이기 때문이다. 바깥세계에서 부정당해 환상향에 자리잡은 환상들은 그 자체로 소수자일 수 밖에 없었으며, 그런 그들을 배제하는 탄막대회에 의해서 다시 한번 잠깐이나마 배척됐다. '탄막이야말로 작은 사람들의 비장의 카드'라는, 이 책의 주제와도 밀접한 신묘마루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자신들을 쫓아낸 외래인에게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희들이 잊어버린 두려움이노라고, 두번 다시 바깥세계에서처럼 배제당하진 않겠노라고.

 

이런 요괴들의 폭주는, 현자들의 개입과 레이무의 마지막 스펠카드에 의해 진정된다. 이는 스펠카드의 폭력적인 면모와 반대되는 스펠카드의 모습을 보여주며, 환상향의 질서를 지키는 것 또한 레이무와 스펠카드 룰임을 보여준다.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요괴는 이빨빠진 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 살의가 없다면 스펠카드는 아름다울 수 없다. 그러나 환상향은 태초에 현자들이 평화를 맹세한 땅이며,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낙원이다. 이 아슬아슬한 모순을 스펠카드 '반칙결계'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줄 정도로 위태롭게 가까운 탄막은 언뜻 이 환상향처럼 불안해보이지만, 우리의 멋진 무녀는 그 균형을 잘 지켜왔다. 25년째 사랑과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동방프로젝트라는 장르처럼 말이다.

 

전혀 공감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탄막은 나에겐 틀림없는 현실이다.

더 그리모어 오브 우사미

 

결론

 

더 그리모어 오브 우사미는 무척이나 정리되지 않았던 스펠카드의 설정을 신주 나름의 정성으로 정리한 책으로, 이전까지 혼용되던 설정들을 풀어낼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전반부의 '보여주기식' 스펠카드와 후반부의 관객에게 위협이 되는 스펠카드를 대비하여 이전까지 논란이 있던 '스펠카드는 어느 정도의 폭력인가'에 대한 질문에 나름대로 답했고, 그 목격자로 우사미 스미레코라는 바깥세계의 관찰자를 이용해 객관성을 확보했으며, 스펠카드라는 폭력이 어째서 환상향의 소녀들에게 두루 사랑받는지를 보여줬다. 이전 설정을 부분부분 해체하여, 과거와 큰 모순 없이 설정을 잘 정리한 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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