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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난제-카구야는 어떻게 니트가 되었는가 본문
카구야 공주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다섯 가지 난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카구야를 갱생시키고 영혼의 짝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난제는 아래와 같다.
1. 월인은 완벽을 숭상했다. 완벽, 그것은 흠결 없는 순수한 최상이다. 완벽의 추구야말로 최선임에 한치의 의심도 없이 모두가 모두에게 언약하였다. 카구야도 마찬가지로 완벽을 추구했다. 그러다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하나는 완벽하게 할 수 없다면 어설프게 시작하지 않는 것이 완벽하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불확실하게 오랜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단번에 해낸다면 더 완벽하다는 것이었다. 얼마 안 가 카구야는 단번에 완벽하게 해낸다는 조건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카구야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완벽을 지키기로 하였다.
2. 카구야는 월인이라는 고귀한 신분이다. 그 중에서도 달의 공주라는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월인 2세대, 3세대와 비교했을 때 모든 면에서 대등 그 이상일 정도로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다들 카구야가 뛰어난, 특별한 존재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구야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달의 현자이자 개국공신, 야고코로 에이린이었다. 그녀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해본 카구야는 이내 철저히 간파되고 훈계를 들었다. 처음 맛본 패배는 너무나 굴욕적이었다. 더더욱 분한 것은 그녀의 지혜에 도무지 이길 바가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거듭 지혜를 겨루어봤지만 그녀는 이 정도는 신경 쓸 것도 못 된다는 듯이 함정과 헛소문과 참소와 암살기도와 암중모략을 모두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우아하게 돌파해냈다. 결국 카구야는 지혜로 에이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고는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계속 노력할 수 있단 말인가? 에이린은 자기보다도 뛰어나고 특별했다. 자기가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잔혹한 현실에 카구야의 마음은 꺾여버렸다. 뻔한 결과를 마주하느니 차라리 시작도 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했다.
에이린은 잘 알지 못하는 공주가 해코지를 해와서 적당히 흘려 넘기고 덮어버리려고 한 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이후로 카구야에 대한 일종의 의무감 내지 부채감을 가지고 다가가자 카구야는 사과를 받아들여주기를 원한다면 달의 금기를 어겨보라고 했다. 그렇게 봉래의 약이 조제되었다. 카구야는 과연 그녀가 자신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호기심이 들었다.
3. 일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달에서는 모든 노동은 달토끼의 몫이었다. 월인은 그들의 봉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들만의 완벽한 정신문명을 발전시키는데 여념이 없었다. 자연히 월인이 노동하는 것은 천박하다는 관념이 생겨났다. 노동하는 것은 달토끼와, 혹은 지상의 더러운 생물들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되는 것으로 보였다. 카구야도 그런 관념을 수용했다. 에이린은 영원정의 가계부를 위해 의사 진료를 개시했지만 자기 하급자를 자청했으니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하는 것이었다. 에이린이 자꾸 게임 말고 다른 활동을 권하는 것도 귀찮을 뿐이었다. 게임도 못 깬다면 다른 무엇을 해내려나. 게임으로는 정상을 노릴 수 있었다. 솔직히 재미있기도 했다.
4. 사실 자기도 이런 건 궤변이라고 은연 중에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에이린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걸어오면 재빨리 문을 닫거나 말을 돌리거나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부터 니트를 그만둔다고 가정해보자. 니트를 그만두는 게 실패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니트를 그만두는 게 성공이라면 그것은 자기가 틀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막중한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자기가 틀렸다고 인정하라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러니 차라리 아예 실패라는 통지표로부터 영원히 도망치는 것을 선택하겠다. 그래서 카구야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5. ‘죽음에로-앞질러-달려가봄’이라고 한들 죽을 날이 없는 봉래인에게는 불가능하다. ‘영원회귀’라고 한들 윤회도 다시 태어남도 여읜 봉래인에게 순간은 끝없는 직선 위의 한 점일 뿐이다. 봉래인에게 시간은 무한하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홀로 시간을 잊고 세월을 벗어난 불멸자에게 필멸자의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필멸자는 유한한 삶을 의미 있게 보내려 한다. 자신이 왜 사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한다. 그러나 봉래인에게 시간은 남아도는 자원이다. 죽는 순간의 후회나 한탄이 있으랴. 그러니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원한 내일 중 무엇을 한들 그것은 수유에 불과하니까. 그것은 무상한 거니까. 이리한들 저리한들 의미가 있을까? 내가 낳은 자식이 나보다 먼저 죽는 것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니 포기하고 되는대로 타성에 몸을 맡겼다. 틀렸으면 나중에 생각하자. 어차피 시간은 남아도니까.
카구야의 니트 생활을 끝내기 위해서는 이 다섯 개의 난제를 해결해야만 한다고 말해진다. 당신은 카구야를 공주님 안기로 들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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